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이문재 시인은 비가 오는 것을 우주가 생리한다고 말한다. 그 시인의 표현대로라면 이 한겨울에 생리하는 게 좀 생뚱맞기는 하다.

눈이 아닌 비라니. 원래 눈이 와야 하는 데 눈이 내려오다가 '전향'을 하여 비가 되었나 보다. 비가 꽤 오랬동안 온다.

▶눈비 오는 날의 회룡사 가는 길

일요일 오후3 시. 뭘 시작하기엔 늦고 하루를 끝내기엔 좀 빠른 시간대가 아닐까. 회룡사 입구 산불감시소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회룡사 가는 길이다.

가랑비가 얼음과 빙판길을 어설프게 시나브로 녹여내고 있다. 비를 맞으며 바삐 하산하는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재바르다.

15분 걸었나? 약수터를 지나 회룡사에 도착한다. 이 길은 한때 숱하게 다닌 코스다. 도봉산 북한산 사패산을 가려면 회룡사 코스는 등산코스의 스탠다드다.그 여정에 회룡사는 경치가 뛰어난 사찰로 유명하다.

▶역사적 인물들이 활약했던 절

회룡사는 그 출생(창건)의 비밀이 풍성하다. 자료를 보면 어느게 사실이고 어떤게 틀린건지 헷갈린다. 신라 때 지었느니 조선 초기에 지었느니 말들이 많다.

의상부터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 전설까지 거들면 이 절은 산(?)으로 갈 법하다. 그래서 회룡사가 산에 왔나?

우리는 어떤 역사적 사실이 뚜렸해야 안심하는 습관이 있다. 과연 그게숫자로 맞아 떨어질까 하는 의구심은 나무 뿌리 만큼 깊다.

실제로 회룡사의 창건은 그게 단점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회룡사의 아우라를 넓히는 비결이다. 요즘 이야기의 중요성이 커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회룡사는 스토리텔링이 풍부한 절이다. 콘텐츠가 많은 사찰이다.

실제 선남선녀가 회룡사를 칭송하든 노이즈 마켓팅을 해준다 하면 그것 또한 회룡사를 대박나게 해주는 셈이다.

경내를 한참 돌아다니고 사진 찍느라 배가 고팠다. 종무실을 거쳐 보살한테 저녁 공양으로 한 상 받는다. 눈치껏 잘만 처신하면 절밥 얻어 먹는는 건 식은죽 먹기다.

▶제2외곽순환도로건설과 난개발로 물부족 겪어

회룡사는 성타스님이 주지이다. 스님한테 속세에서의 나이는 가름하기 어렵다. 여기서 30년을 수행 중이다. 단아하다. 스님과 차를 마신다.나는 성타스님과는 인연이 있다.

23년 전. 불교계가 앞장서 제2외각도로건설 반대운동을 줄기차게 펼쳤었다. 특히 절 근처에 지하터널을 뚫어 도봉산과 천년고찰 회룡사의 수행 환경이 위협 받게 되자 나는 경기북부환경운동연합 일원으로 결합 한다.

결국 순환도로는 개통됐고 절의 환경은 미세하게 훼손을 피할 수 없었다. 이때 성타스님은 치열하게 반대운동을 이끌었다.

우리는 전장터에서 돌아운 용사처럼 서로를 알아본다. 나는 회룡사가 20년 전과 지금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묻는다.

"갈수록 물이 부족합니다. 도봉산.사패산에 커다란 터널을 뚫은 후로 수맥이 뒤틀린 듯 합니다. 또 절 아래 주택과 아파트가 많이 생겨 그로인한 난개발이 원인입니다."

천년사찰 회룡사도 이렇듯 개발로 인한 몸부림이 커지고 있어 고민이라고 성타스님은 말한다.

▶신중탱화가 유명한 비구니절

회룡사는 신중탱화와 5층 석탑이 유명하다. 탱화야 어느 절인들 없겠냐마는 이곳 탱화는 전국적으로 알아준다.

그리고 도봉산 정상과 마주보는 5층 석탑도 눈 비 오는 오늘도 늠늠한 자태가 일품이다. 절을 한 바퀴 돈다. 절의 규모가 생각보다 꽤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신도는 3천명 정도. 중간중간에 비맞은 등산객들이 사진 찍는다. 그들이 뿌린 웃음 소리는 비 사이로 끼어들어 산에서 내려 온 운무 틈으로 산화한다. 웃음의 다비식. 등산객들한테는 회룡사가 딱 참새방앗간이다.

▶눈비 오는 풍경 속에서 신묘함 느껴

어둠이 운무 사이에 틈입하여 회색톤 캠퍼스 같다. 사위는 몽롱한 입자가 점령군처럼 깔려 있다. 신묘한 풍경이다.

저녁 6시다. 한겨울의 겨울산에서 6시는 하산 하기엔 꽤 늦은 시간이다. 사람 하나 없는 길을 걷는다. 길은 질척질척하다. 비가 얼음과 엉켜 아수라장이다. 마치 불국토에서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폴 발레리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고 말한다. 나도 분발한다. 눈비가 온다, 다시 살아야겠다고.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