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늦봄, 의정부와 상계동 접경에 살던(행정상으론 의정부 지역) 천상병 시인을 만나러 간 적이 있다.

당시 천상병 시인은 몸이 쇄잔하여 나의 인사말을 잘 못 알아듣는 듯 했다.

나로서는 '역사적인 만남'이었지만 시인은 거동조차 힘들어 했고 낯선이의 출현에 그닥 흔쾌하지 않았다. 시인으로부터 사인을 받지 못한 시집은 갑자기 후줄근해졌다.

그러구러 2년여 후에 천상병 시인은 지상에서 소풍을 마치고 하늘로 갔다.

이게 나와 천상병 시인과의 손톱만큼의 인이다.

▶목순옥 여사와 귀천 찻집에서

나는 그해 초여름,인사동에 있는 전설적인 찻집 '귀천'을 갔다.

지난 늦봄에 천상병 시인과 접선이 '미수'에 그친 것을 보상 받으러 쳐들어 갔다.목순옥 여사가 타 준 모과차를 마셨다. 더운 여름이었는데 뜨거운 모과차가 오히려 좋았다.

뜨거운 것을 마셔야 시원하달까. 좁장한 찻집에서 금방 나왔다. 좁은 공간에서 주인장과 손님 한두 테이블에서 나눌 시선이 넉넉지 않았다.

그래서 차만 마시고 나왔다. 다만 천상병 시인을 만나러 집에 갔었다는 말은 한 기억이 난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는 귀천은 그래서 인연이 됐고 의정부 어느 찻집에서 두어 번, 의정부예술의전당 전시실 먼 발치에서 서너 번 본 기억이 있을 뿐.

▶천상병 예술제는 천목문화사랑방 단체에서 치러

의정부는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천상병 예술제'를 매년 봄에 연다.

벚꽃이 질 무렵이면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매년 시인의 문학혼을 기리는 행사를 연다. 올해로 열두 번째다. 각종 시낭송회와 음악회,유품 전시 등을 펼친다.

천목문화사랑방은 의정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단체다.

이미 천상병 예술제로 '동맹'을 맺었지만 좀 더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열린 모임이 필요하다는 밑으로부터 공감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그 때가 2013년이다.

'문화싸롱 공'은 문화.예술 게릴라들이 서식하고 있는 아지트이다. 공식,비공식적으로 각종 전시와 작은 음악회 등이 열리고 있었다.

박이창식 예술기획가와 문미희 화가 등이 주축이 되어 이 공간을 창조해 나갔다. 그들은 동네에서 주민들과 교감하며 공간을 시민에게 오픈했다.

그야말로 쌀롱문화를 재연하고픈 바램이 컸다.

그러던 차에 지역에서 활발하게 문화운동을 하는 강혁(지역문화연구소)소장이 결합되어 '천목문화사랑방'을 출범시켰다.

처음에는 가볍게 이야기가 됐지만 분위기가 무르익자 박이창식씨와 주변 사람들이 강혁 소장을 '사주'하여 그를 초대 회장으로 밀었다.

나도 적극 찬동했고 나중에 운영위원으로 '징발'됐다. 물론 천상병추모사업회 회장으로 강제로 장기 집권을 누리고 있던 김병호 극단 대표도 큰 힘이 됐다.

▶천+목이 합체하여 천목문학사랑방이 탄생

천목문화사랑방은 천상병 시인의 천과 목순옥 여사의 목을 빌려 '결혼'시켜 천목,천목문화사랑방으로 출범했다.

처음 이 단체는 천상병 문학관을 건립하려는 분위기를 만들었고 회원들과 열심히 활동했다.

이를 시민들에게 적극 홍보하고 의정부시 측과도 접촉을 하는 등 나름 애를 썼다. 하지만 이 문학관 사업은 예산상의 문제로 그 높은 허들을 못 넘고 넘어졌다.

현실의 벽을 실감한 이 단체는 일단 1.4후퇴를 한 후 이 사업을 장기 과제로 넘기고 진지전에 들어갔다.

▶소호에서 모과나무를 심고 전시실에선 LP음반으로 시인의 사랑을 들어

천목문학사랑방은 작년부터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활발한 행사를 벌였다.

천상병 예술제 기간 동안 재밌고 실속 있고 시민 참여형 일을 벌였다. 직동 공원에 모과나무를 심고 '소호'라는 쉼터를 만들었다.

여기에 앉으면 그 앙증맞은 분위기에 살짝 미소가 번진다. 이 부근에 심은 모과나무는 가을에 따서 담아 다음 해에 문학다방을 운영하는 차 메뉴로 사용한다.

그리고 주목할 것은 문학다방이다.

이는 의정부예술의전당 전시실에서 세트를 꾸며 분위기 있는 찻집을 만드는 일이다.

공간은 한없이 넓어 자칫 썰렁 하기 쉽고 천장은 하늘에 닿아 있어 쓸데없이 공간의 부피를 수직화 시킨다.

사실 이 전시실에 들어서면 사람이 좀체로 그 포근함을 유지할 수 없다. 주변에 특별한 공간 연출로 오브제를 놓지 않는 이상 말이다.

그러나 천목문화사랑방 임원과 회원들이 협심하여 멋진 문학다방을 만들어 내곤 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빠듯한 예산으로 다방 분위기 나는 세트장을 만들었다.

여기서 마시는 모과차와 커피는 꽤 삼삼하다. 천상병 시인이 아껴 들었던 LP 음반은 특별하다.

나병춘(2대 회장)회장의 말을 들어 본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회원과 시민들이 모여 시와 음악을 나누는 이 공간이 더 없이 소중합니다"

"비록 축제 기간(10일 정도)동안이지만 천상병.목순옥 두 맑은 영혼을 기리는 데 부족한 시간은 아닙니다. 시로 이렇게 만나서 소통하는 게 참 행복합니다"

박이창식씨는

"천상병 예술제를 통해 우리 지역에 멋진 시인이 한 때 살았었다는 느낌의 공감대는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문화.예술은 느리게 퍼져 나가죠.하지만 삶에 강한 문신을 새기죠. 천목문화사랑방은 그 일을 느릴망정 끈질기게 밀고 나갈 것입니다.누가 알아 주던 몰라 주던 말입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천목문화사랑방은 시인의 공화국을 지키는 수비대고 그 회원들은 전사들이다.

천상병이여 영원하라~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

<본 기사는 의정부시 조례에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