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까지 오른 재상다운 위엄 갖춘 묘"

가을 날씨가 화창하다. 하늘은 높고 시야는 뻥 뚫린다.

걷기에 좋고 자전거 타는 것은 더 좋다. 신숙주묘에 간다.

가능동에서 출발하여 고산동까지 간다. 신죽주묘는 고산 동 고산초등학교 부근에 있다. 자전거로 간다.

배낭에 점심 도시락과 물,사과 한 개, 막걸리 한 통도 잊지 않는다. 소풍가는 느낌이다. 송산 교도도 부근에서 왼쪽으로 접어들면 고산동이다.

▶신숙주묘지 가는 길엔 코스모스가 방긋 검문을

마을 입구 양옆에는 황금 벌판이다.벼가 고개를 숙이며 막바지로 여물어간다. 자전거가 마을을 들어서자 코스모스가 양쪽에서 화사하게 피었다.

가을에 코스모스 풍경은 정겹다. 이들은 나의 여정을 반겨주기라도 하는 듯하다.

함민복 시인은 코스모스를 "여선생 호루라기 소리에 나란히 줄지어 선 꽃"으로 묘사한다. 여기서 피는 코스모스는 고산초등학교 여선생님 호루라기 소리에 반듯하게 줄지어 있다.

고산초등학교를 지나자 버스정류장에서 신숙주 묘 안내판이 길을 재촉한다.

신숙주 묘지는 생각보다 크고 넓다. 주차장도 널찍하고 화장실 시설이 깨끗하다. 의정부시에서 평소 잘 관리하는 것 같다.

묘지 뒤로는 나무들이 호위병처럼 둘러 싸고 있다. 묘는 왕릉처럼 구릉지를 제법 올라가야 한다. 세조 때 영의정까지 오른 재상다운 위엄을 갖춘 묘다.

▶신숙주는 행운아

신숙주는 세종, 예종, 문종, 단종, 세조시대에 활약한 테크노크라트이다. 그는 출신이 좋다. 그의 아버지 신장은 행정관료이다. 그는 행운아다.

신숙주는 정치적으로 평생 험한 꼴 한 번 당하지 않은 보기 드문 인물이다.우 리 역사를 통 털어 신숙주만큼 출세가도가 신작로처럼 쭉쭉 뻗어나간 사람을 찾기 어렵다.

1436(세종20년)년에 진사를 뽑는 시험에 합격한다. 출발이 좋다. 이후 세종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집현전에서 한글 창제를 하는 데 기여한다.

이후 수양대군과 죽이 맞아 명나라에 같이 가는 행운이 그의 운명을 바꾼다.

야심이 많은 수양대군은 1454년(단종2년)에 계유정란 이라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탈한다. 이에 신숙주도 합류하여 새로운 정권 탄생에 기여한다.

물론 한명회의 역할이 식숙주보다 훨씬 컸지만 세조는 신숙주를 주요 직책에 앉힌다. 이후 신숙주는 도통지로 시작하여 승승장 구하여 결국 40살의 젊은 나이에 우의정, 5년 뒤에 영의정 에 등극한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국무총리까지 한 셈이다.

▶영의정까지 오를 정도로 출세길이 뻥뻥 뚤려있어

일부 역사가들은 그를 배신자로 단정한다. 일부 성씨들은 그를 '숙주' 나물로 폄하하여 숙주나물은 입에도 대지 않는다.

신숙주가 세조 편에 서서 성삼문, 박팽년 등 집현전 동료 들을 척살하는 데 그가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역사는 이긴자의 편이라는 말이 있지만 역사가의 정치적 '올바름'으로 판단하면 그는 한명회와 함께 기회주의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신숙주도 피비린내 나는 정쟁 속에 왜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정의를. 다 운명이고 운명을 사랑한 것이 결과적으로 '로또'가 된 것이다. '아모레 파티(Amore Fati)' 즉, 운명을 사랑하라.

▶신숙주나 나나 배고프면 밥 먹어야

그런 상념으로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 오후1시가 훌쩍 넘는다.주차장 쪽으로 내려가서 신문지에 가져온 음식을 내놓는다. 막걸리로 갈증을 없앤다.

알콜이 식도를 타고 싸하게 퍼저 나간다. 곧이어 수저가 부지런히 입으로 간다. 배가 고프면 나나 신숙주나 마찬가지다.

이에 소설가 김훈은 <흑산>에서 냉엄하게 말한다. "무릇 배고픔을 면하자면 오직 먹어야 하는데 하고많은 끼니 중에서도 지금 당장 먹는 밥만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습니다. 아침에 먹은 밥이 내일의 요기가 될 수 없음은 사농공상과 금수축생이 다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허기를 채우니 풍경이 풍요로와진다. 차로 가족 나들이 오는 이들이 간간이 있다.

그들은 돗자리 펴놓고 음식을 먹고나서 누워, 하늘을 본다. 느긋한 휴일 오후를 들기는 모습이 종요롭다.

▶신숙주묘는 버스로 쉽게 올 수 있어

의정부 시내에서 대중교통으로 오는 길이 쉽다. 의정부역에서 1-5와 1-6번이 각각 한 시간에 한 대 꼴로 간다.

각각 다른 버스가 가니 결국 30분에 한 대씩 가는 꼴이다. 신숙주 묘 정거장이 있어 쉽게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의정부역에서 자전거로 40분, 버스로 20분 걸린다.

세상은 변하는 법. 고산동은 남양주와 경계선이고 포천 수목원 자락이어서 물과 공기가 좋다. 민가는 드물고 집성촌이 여럿이 있다.

오랜 역사가 고여 있는 마을이다. 이 동네가 재개발이 되어 땅이 대부분 수용되고 집들은 헐릴 예정이다.

토지 보상과 이주가 진행 중이어서 내년이면 상전벽해가 될 고장이다.

신숙주묘는 보호되겠지만 신도시가 들어서 는 살풍경한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신숙주의 권력만큼 허무하게 마을이 해체된다.

▶반나절 코스로 소풍오면 좋은 신숙주묘

묘지는 초록이 지쳐있고 저멀리 들판은 황금색이 넘실대 고 하늘은 옅은 파란색 색 바탕에 새털구름으로 디자인이 되어 있다.

지금 이 풍경은 신숙주만큼 풍요롭다. 넉넉한 가을이다.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

<본 기사는 의정부시 조례에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