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풍선이다. 봄이라는 풍선이 터지면 그 순간 여름이 된다.봄은 여름의 열기와 만물이푸르러지는 압력을 버틸 수 없다.

아무리 저항해도 열과압에 견딜 우주의 기운은 없다. 봄은 겨울에 위축됐고 압축됐던 온갖 사물이 자신의 몸피 를 키우려고 아우성이다.

컴퓨터의 압축파일을 풀면 웅크 렸던 많은 정보가 뻥튀기처럼 튀어나오 듯이 말이다.

봄은 압축파일을 푸는 우주의 상징적 기운이다. 강과 산은 제각기 살집을 키우며 뻥튀기를 한다. 보라, 봄은 천변의 풍경을 풍성하게 살찌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3살짜리 아기 같은.

이 봄에 강은 상선약수 같은 그 생명의 액체를 온 대지를 적시며 바다에 싣어 나르기 바쁘다. 강은 하천에서 주유하고 그 하천은 개울에서 젖은 댄다.

봄을 느낄려면 의정부 중량천 길을 걸어야

의정부에서 봄을 제대로 만끽하려면 당장 부용천이나 중량천으로 달려갈 일이다.

그 하천들은 봄비를 머금고 제 몸을 풀어풀어 한강으로 흐른다. 둑 양쪽엔 꽃과 나무들이 사열하듯 그 하천에 흐르는 물을 물끄러미 본다.개나리와 진달래가 보고 벚꽃이 보고 철쭉이 보고 온갖 생명들이 하천에서 페스티벌을 벌린다.

동물인들 가만히 있을소냐. 심심찮게 중량천엔 오리와 왜가리가 찬조 출연하여 식물성 분위기에 동물성 임팩트를 준다.

봄엔 온통 오디션 보기 바쁘다. 4월 하천을 걸으면 안구정화에 이만한 게 없지 싶다.

나는 걷는다, 이 봄에 작은 강, 중량천을.

개나리 피고 목련이 목이 빠질랑 말랑,진달래 대기하고 벚꽃이 벗들에 신호 보낼 즈음에 말이다.

중량천은 의정부를 북남으로 가르는 동맥이다. 양주 백석에서 발원한 중량천은 한강에 젖줄을 대는 핵심 세력이다. 이 주요(핵심) 세력이 옛부터 하는 말이 가관이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것이니 나를 업수히 여기지 마세요"

곰곰히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성계가 자기 상주될 '핏덩이'한테 괄시 받아 열 받고 있던 곳이 의정부라는 곳이 아닌가.

함흥차사 연원에 의정부도 연고권이 있겠다. 그 전에 회룡사에 이성계가 왕이 되기 전에 머물렀다는 얘기가 있는 걸 보니 중량천에서 용이 나긴 났다.

요즘은 "개천에서 욕이 나온다"고 할 정도로 다들 사는 게 팍팍해졌으니 격세지감도 이런 격세지감이 없겠다.

중량천엔 좌청룡 우백호가 있다, 좌부용 우백천

부용천과 백석천은 정맥이다.이 하천들은 겨우내 푸석해진 땅에 생명의 액기스를 뿌리며 시내 중심부에 박카스 같은 활력을 준다.

가능동 대원버스 종점에 있는 철길 다리, 금작교에서 출발한다.목적지는 호원동과 도봉동 경계선까지.

금문교는 가능동과 금오동을 오가는 철길이다. 지금은 금오동에 주둔했던 미군부대가 철수했지만 10년 전만해도 주요 군수물자들을 싣어 나르던 철도였다.

어린 시절 중량천은 나의 흑백사진

42년 전으로 흑백 사진을 꺼내 본다. 나는 그때 초딩 4학년이었다.의정부4동 배영국민학교에 다녔다.

학교 파하면 중량천은 또래들과 형, 동생들이 놀던거대한 놀이터였다. 봄이면 봄,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았다.

그 당시 장난감과 놀이 시설이 어딨었겠나. 자연이 온통 장난감이지. 그야말로 다 자연산이었다.

아이들은 늘 중량천으로 떼거지로 몰려갔다.아마 늦은 6월이었을게다. 장마가 오기 전이었으니 수량은 많지 않았다.

동네 제일 대빵인 한 형이 우리들을 끌고 금문교로 갔다. 그 대빵은 10명 남짓한 아이들한테 "야 내가 저 다리에서 뛰어내릴테니 학년 높은 순서대로 뛰어 내린다! 알았지"라고 군대 교관처럼 목청을 높였다.

다른 애들은 삼청궁녀처럼 풍덩풍덩 강물, 아니 개천, 아니 하천에 뛰어들었다. 내 순서가 오자 철길에서 본 모래바닥이 천길 낭떨어지 같았다. 밑에서 대장은 빨리 뛰어내리라고 다그치지 뒤에서는 어린 것들이 그것도 못 하냐고 갈구지. . .

나는 애라 모르겠다고 몸을 날렸다. 중력을 거스릴 수 없던 나는 물과 모래에 불시착했다. 물과 모래가 스펀지처럼내 몸뚱아리를 감싸앉았다.

지금 금작교를 보면 그 높이는, 어른이 됐을 때 초등학교와 그 교실,의자,책상을 보고는 "애걔 이렇게 작았나"할 정도의 그 탄식이다.

포천교엔 두물머리가 있어

다리를 지나 포천다리 방향으로 물과 함께 흐른다. 벌써 개나리가 분위기를 한껏 잡고 있다. 꽃샘추위로 잠시 찌그러진 마음이 노랑색을 보니 환해진다.

대충 50미터 간격으로 돌다리를 놓아 동서로 서운한 지형에 교통을 할 수 있게 했다.

의정부는 중량전과 전철이 합작하여 남북으로 가른다. 자연히 동서가 서운하다.

원래 동서사이는 좀 껄끄럽다. 지리적으로 보면 의정부 동서도 '동서'처럼 좀 거시기하다.

다행히 동서로 서운해진 것을 다리와 돌다리로 위안을 한다. 마치 이 험한 세상에

다리가 돼듯이 말이다.

금작교에서 15분 어슬렁 걸으니 포천교가 나온다. 시내에서 이 다리를 지나면 금오동, 자일동을 거치면 축석고개가 나온다. 그 고개에서 아래를 보면 포천이다.

포천다리를 40미터 지나니 합수머리가 나온다. 이 삼거리에 사람과 자전거,유모차,보드 등이 오고간다.

휴일이라 봄을 느끼러, 운동하러 천변에 진달래,개나리,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이 제법 흥성거린다.

이 곳에서 중량천은 용현동에서 달려온 부용천이라는 아우 를 만나 그 몸피를 부쩍 키워 400미터 후에 백석천을 합병한다.

중량천은 포식자다. 중량천은 간첩이다. 북에서 남파하여 암약하며 흐르다,흘러 포천다리 부근 두물머리에서 부용천과 접선하여 먹어치운 뒤 장암동 롯데마트 근처에서 작업하여 인수합병한다.

M&A의 대가다. 결국중량천은 한강에 합병될 자신의 운명을 알기나 알까.

포천다리를 지나고부터 사람들이 많아진다. 수량도 덩달아 풍부하다.여기가 길목인가?

진달래가 하천변에 쫙 깔 렸다. 온통 노랑 물결이다.봄엔 꽃 핀 개나리와 사람은 색깔에서 서로 오해한다. 사람이 삶이 노래지면 눈 앞이 노래져 그 인생 '폭망'이다. 하지만 개나리는 노래지면 그건 꽃한테는 '화양연화'다.

올드타운의 아우라가 물씬한 신곡다리

물과 함께 흐르니 신곡교가 나온다. 신곡교는 시내와 신곡동,용현동에 양다리를 걸치며 첩 역할을 잘도 한다.

이곳은 제일시장이 있고 의정부역이 있는 올드타운의 중심가다.

신곡동은 60~80년대까지 빈민촌이 많았던 동네다. 여름만 되면 홍수로 서민들을 도탄에 빠지게 한 지대가 낮은 마을이다.

포천다리와 신곡다리는 시내 중심부에 있어 교통량이 많다.

사람,차, 강아지,자전거,오토바이가 쉴 틈 없이 건너간다.이 두다리는 뼈가 휘어질 덩도로 고생을 가장 많이 하는 다리다. 피곤하겠다. '다리'가 아프겠다.

호원동 방향으로 흐른다. 세월도 흐르고 나도 흐른다. 간이 운동 시설들이 있어 시민들이 레크레이션을 즐긴다.

스쿼시,배드민턴, 농구장, 등이 심심찮게 있어 좋다.

이 봄, 꽃피는 4월에 중량천에 마실 온 장삼이사들은 얼굴 에 꽃이 피었다. 왜 없겠냐, 삶이 고달픈 것을. 물이 풀리는 이 하천에서 그 시름 다 부리게 된다. 다들 꽃이 된다.

의정부 최고의 화양연화를 즐기는 회룡 벚꽃길

뱀처럼 느릿느릿 걸으니 장암교가 나온다. 여기부터 꽃대궐이다.

우측에서 정신 없이 흘러 온 백석천이 몸을 풀어 여기서 합방한다. 중백합방이다. 중은 중량천이고 백은 백석천이다.

상춘객들이 환호한다. 백석천이 합방하기 전 여울에서 힘찬 물소리를 낸다.

꽃들이라고 왜 환호하지 않을소냐. 다 한다. 인간이 듣지 못할 뿐. 개나리,진달래,목련,벚꽂들이 소리 지른다.그 러나 그 소리는 '용각산'처럼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인파가 하천따라 벚꽃길따라 유장하게 흐른다. 강아지와 유모차도 따라가고 벚꽃 향기가 하천을 메운다.

장암동 벚꽂길은 4월 10일 전후로는 잔치집 분위기다. 이 때를 놓치면 상가집 분위기다.

낙화한 벚꽃 잔해와가지 끝에 매달린 시한부 인생,아니 화생(?)의 처지는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벚꽃은 꽃이 피고난 후에 잎이 난다. 조삼모사과 출신이다.

벚꽃에 들뜨고 커피에 피로 씻어

잠시 쉬어가는 카페가 눈에 띈다. 내가 이맘 때면,꽃의 시간에 들르는 쉼터다.

카페 '조금 느린집'. 꽃밭에서 웅크리고 앉아 수줍게 자리 잡은 카페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강변 풍경은 압권이다.

그 벚꽃길 뒤엔 병풍처럼 수락산이 그림 같다. 귀차니즘과 먹고사니즘에 치인 이들이 이 카페에서 커피한 잔으로 그 시름을 진공청소기처럼 날려버린다.

에스프레소를 시킨다. 커피의 압축파일이다. 풍경에 취해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삶은 고통이다. 사람은 사는 동안 그 고통의 바다를 건넌다. 중량천 꽃길에서 커피 한 잔에 삶이 위로를 받는다. 이 봄, 아름다운 풍경 앞에 우리의 고통과 슬픔도 풍경이 된다.

봄날은 가고 올해 화양연화는 여기서 끝난다. 풍경을 보는 것이 소풍임을 꽃처럼 느꼈다. 봄날은 간다.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

<본 기사는 의정부시 조례에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