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와 롯데마트가 어둠 속에서 마주본다

11월 끄트머리 날,강추위가 몰아친다.바람이 불어 체감 온도가 확 내려간다.오후4시.벌써 어둠이 밝음을 밀어내기 시작한다.

용현동 정문무 장군묘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그 어둠의 부피를 키우고 있다.맞은편엔 롯데마트가 있다.

직선 거리로 50m쯤 될까.

옛날로 대표되는 장군묘지와 현대 소비사회를 극명하게 밝히는 롯데마트 네온사인이 묘한 대조다.

서서히 어둠이 보태질수록 옛것(정문무묘)은 썰물처럼 쓸려 나가고 새것(롯데마트)은 두드러진다.

전쟁 사료가 부실하긴 정문무장군도 마찬가지

우리나라는 유난히 외침이 잦다.수많은 전쟁과 전투를 치룬 역사를 가지고 있다.가히 전쟁의 역사일 만큼 우리는 강대국에 시달린 나라다.

하지만 이렇다할 전쟁,구체적으로 전투에 대한 자료가 극히 드물다.

하물며 이순신의 난중일기 는 일기 형식이긴 하지만 전투 장면을 묘사하거나 작전 등 이 거의 없을지경이니 말해 무엇하랴.조선왕조실록에도 그것에 대한 내용이 거의 없다.

물론 오랜 전쟁으로 귀중한 책과 자료가 전소되고 유실된 것도 무시할 순 없다.

정문무장군의 자료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함경도에서 왜적을 무찌르고 혁혁한 공을 세웠다가 전부다.

생선에 살을 모두 발라내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격이랄까.이렇듯 우리 역사는 디테일은 약하고 글자 몇 자로 상황 묘사를 대신한다.

특히 전쟁 분야는 그게 더 심하다. 고전의 반열에 오른 아우츠비츠의 '전쟁론'은 아니라도 아직까지 전쟁과 전투를 다룬 본격 저작물은 없다.

그 후손은 그 빈칸을 상상 으로 메꾼다.상상력도 구체적인 자료와 근거 없이는 사상누각이거늘.

'행시'로 합격하고 모자라 '육사'출신인 정문무

정문무(1565~1624)는 서울에서 태어나 선조21년 과거에 합격하여 함경도 부평사로 일하고 있을 때 임진왜란을 맞는다. 선조는 의주로 도망가기 바빴고 백성들은 멘붕에 빠져 그야말로 나라가 '모라토리엄'에 빠진다.

누가 그랬던가 역사에서 지혜를 얻지 않은 민족은 그 역사를 반복한다고. 그후 전쟁이 터지자 왕이 백성을 등 뒤에 두고 제일 먼저 도망간 역사는 이승만한테 '유전'된다.

6ᆞ25전쟁 때 서울을 사수 하고 곧 북한군을 몰아낸다고 새빨간 거짓말로 리바이 벌된다.

빡세게 싸우고 출세하지만 말년에 고문으로 죽어

전쟁이 나자 정문무는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맞선다. 의병장으로 그는 명천,길주 등에서 싸워 관북 지방을 되찾는 무공을 세운다. 이때 공으로 길주목사가 된다.

하지만 인조때 이괄의 난에 연루되어 고문을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정문무묘는 12년 전 2002년 깔끔하게 단장했다.

장군의 묘는 부인고령 신씨와 합장한 분묘다.

잔설이 묘지 위에 드문드문 터를 잡고 있다. 묘소 주변은 소나무가 은성 하게 호위하고 있다. 정문부의 묘지 위엔 그의 부모님의 묘가 있다. 그는 죽어서도 효도한 장군임을 팩트로 알 수 있다.

묘지 위엔 용현산업단지의 불빛은 떠오르고

숲 사이로 언덕 넘어 용현산업단지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고 있다. 의정부는 이렇다할 산업이 없다.

소비도시다.대부분 밥을 벌러 서울과 수도권으로 쳐들어 갔다가 밤이 되면 집(진지)으로 '퇴각'한다.

하지만 이 도시에도 공업의 흔적은 없을 순 없겠다. 그건 밭과 논이 있듯이 농부가 있다, 극소수이긴 하지만, 0.0001%쯤 될까?

이 용현산업단지는 주로 철강과 금속 업체들이 쇠를 깍고 조립을 한다.힘찬 기계음은 그리 들리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산업의 활력이 떨어진 우리 경제의 단면을 보는 듯 하다.

묘지 언덕을 내려오자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너른 집터에 남향으로 한옥이 큼지막하게 터를 잡고 있다. 집의 관상을 보아하니 터무니가 없는 게 아니라 터무늬가 있는 땅에 늠늠하게 자리잡은 풍채다.

아낙네가 마당에서 내가 있는 대문으로 온다. 나는 그의 궁금증을 풀어 줄 의무가 있어 먼저 말한다.

"정문무장군 묘지를 보고 가는 길에 집이 있길래 들렸습니다"

" 어휴, 이렇게 춥고 어두운 시간에 오셨네요? 12월부턴 해설사가 없어요."

"이 집은 정문무의 후손이 사는덴가요?"

"예. 14대 후손이 살고 있어요"

" 가정집인데 후손이 살면서 묘지도 관리하시나봐요"

" 그래요"

아낙네는 날도 어두우니 이제 그만 물러나라는 눈치다. 후손인 남편은 지금 없다고 덧붙이며 어둠이 짙어가는 마당으로 간다.

정문무 후손이 사는 집을 나와 롯데마트 있는 데로 간다. 갑자기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온 느낌이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를 넘는 듯 하다. 행인과 마트 손님이 오늘은 뜸하다.

가족들이 여기 오면 신숙주묘와 삼도 챙길 수 있어

정문무묘 가는 교통편은 나쁘지 않다.

노선버스와 마을버스 경전철 어룡역이 바로 앞에 있다, 걸어서 5분 거리.

이 묘지를 들리면 부록처럼 신숙주묘를 갈 수 있고 삼귀마을도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예로부터 송산은 선비들이 '은퇴'하여 여생을 보냈고 의리 있는 고려 충신들이 조선 개국을 못마땅하게 여겨 아예 이 곳으로 숨어 들어왔다.

위대한 군인은 평화주의자, 정문무장군

추위가 바람에 칼을 달아 옷깃에 파고 든다.

생사가 풍전등화일진데 어디 춥다고 싸움을 게을리 했겠는가. 그는 오늘 같이 살을 에이는 삭풍에도 왜놈들과 치열하게 싸웠으리라.

지금,남북은 온전한 평화체제가 아니다. 아직 휴전상태다. 심하게 말하면 61년 전 휴전을 하고 있는 상태다.

다만 그휴전으로 인해 가짜 평화 기간이 길어지고 있을 뿐이다.

일본군을 몰아낸 정문무장군도 전쟁의 끔찍함을 수없이 보았을 터. 진정한 군인은 전쟁 중에 평화를 꿈 꾸고 평화시에는 전쟁의 근심을 늘 생각한다.

정문무 장군 묘지를 떠나며 '평화시에는 젊은이가 노인을 묻고, 전쟁이 터지면 노인 이젊은이를 묻는다.'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그는 무관과 무관을 겸비한 선비다.

선비는 평화주의자다.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

<본 기사는 의정부시 조례에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