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풍경은 경전철 칼에 허리가 잘리고

의정부 야외무대 옆에 있는 한 카페에서 바깥을 본다. 북한산이 육중한 부피로 하늘을 치고 올라간 모습이 훤하다. 그 수직이 샘났는지 경전철이 허공에 수평으로 훼방을 놓는다. 이 간섭은 캔퍼스 바탕 가운데에 회색 물감으로 획~그은 꼴이다.

5부 능선 쯤에 경전철 시설물이 북한산의 허리를 싹뚝 가른다, 사정 없이. 풍경이 선혈이 낭자하여 애처롭다.

명산이 난도질 당했는데 시내에서 제일 높은 40층 아크라티움인들 남아 나가겠는가. 그 살풍경한 모습을 시청역이 묵묵히 지켜본다.

시청역 마당은 넉넉한 엄마의 품

시청역으로 간다. 이 역사는 땅부자다. 앞으로는 엄청 넓은 마당을 뒀고 뒤로 듬직한 사패산을 평풍 같이 두르고 있으니 남부럽지 않은 역이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도 있듯이 이 '참을 수 없이' 너른 마당을 착한 이웃이 김장과 각종 나눔 행사를 열수 있도록 어려운 이웃들에게 인심을 베풀고 있으니 미쁘다.

의정부 행정의 메카는 바로 여기다. 시청을 비롯해 의회, 도서관, 세무서, 예술의전당 등이 장기판 처럼 펼쳐져 있다.

12월 6일부터 환승 혜택 받아

계단 초입에 12월 6일부터 의정부경전철 수도권 통합 환승시스템 품 속으로 들어간다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그 동안 경전철이 태생부터 천덕꾸러기 '서자' 취급을 받아 왔다. 생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제 좀 기를 펴려나?

아무래도 할인 제도가 생기면 승객이 늘겠지.시의 적자가 좀 줄어 들려나. 아님, 언 발에 오줌 누긴가.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시청역 앞엔 내가 자주 가는 식당 두 곳이있다. 하나는 만두맛으로 유명한 칼국수집이고 또 하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두 집은 오래된 건물에서 장사를 한다. 이게 마음에 든다.

30년은 좋이 넘는 이 주택가는 의정부의 북촌이고 서촌이다. 의정부의 미래다. 건물이 낮고 오래되어 임대료가 비교적 낮고 주차는 공영주차장이 있어 편리하다. 몇 년 후면 이곳도 뜰 것이다.

복개된 하천을 걷어 자연으로 돌려 주는 공사가 이어지고 있다. 시당국은 청개천을 거울삼아 최대한 친환경, 생태적으로 하천을 개발하길 바란다.

오래된 집이 오래된 미래다

오래된 건물이 많아야 임대료가 낮아 서민이 와서 장사를 할 수 있다.그 러면 자연스럽게 문화 공간들도 생긴다. 삶의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되어 도시가 활력을 얻는다. 서울의 홍대앞이 그랬고 삼청동, 북촌, 서촌 등이 그랬다.

공영주창에서 보면 작은 가게들이 아기자기하게 골목을 파고들어 만든 이 '서식지'를 보면 흐뭇하다. 이걸 잘 지키는게 올바른 행정이다. 어설프게 재개발하면 영세 상인들은 다 쫓겨나고 거대 상업자본이 대형 건물 위주로 재편성하는 건 필연이다.

우리는 이미 종로의 피맛골을 쓸어버리고. 재개발을 한 아픔을 기억하고 있다. 그곳은 이제 옛날의 그 포근한 정취를 찾을 수 없고 맘모스 같은 빌딩들이 주상절리를 이루고 있다.

주상절리는 제주도와 임진강(한탄강)에만 있어도 된다. 도시에서 건축물의 주상절리는 재앙이다. 이런 데를 누가 거길 가고 싶어 하겠나. 그곳은 지금 쓸쓸해졌다.

너무 큰 건물은 사람에게 편치 않다는 것을 행인들은 안다. 한때 그곳에서 고등어 냄새, 전 부쳤던 서민들의 인간 적인 훈훈함이 그립다.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라고 요리사 박찬일은 말한다. 그 추억의 두께가 많은 도시가 좋은 도시다.

그럴려면 낡고 누추해도 오래된 건물을 함부로 헐지 못하게 시민은 시에 요구하고 그걸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지금도 피맛골만 보면 천불이 난다, 그 공간을 없앤 행정가와 우리의 탐욕을.

의정부는 지난 몇년 간 재개발로 몸살을 앓았다. 다행히 주민투표로 부결시켰다. 의정부는 시민의식이 팔팔 살아 있다. 도봉산(사패산)의 정기가 시민의 가슴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경전철을 '터무니' 있게 쓰는 건 우리 몫

의정부경전철엔 역이 모두 15개 있다. 발곡ㅡ회룡ㅡ범골ㅡ의정부ㅡ시청ㅡ흥선ㅡ중앙ㅡ동오-새말ㅡ경기도청북부청사ㅡ효자ㅡ곤제ㅡ어룡ㅡ송산ㅡ탑석

이 역들은 다 역사와 개성이 있다. 당연히 땅의 지문과 역사의 DNA가 녹아 있다.

땅에 지문(흔적)이 없으면 우리는 '터무니' 없다고 말한다. 터무니 없다는 것은 근본이 없다는 슬픈 말이다. 의정부는 시승격 50년을 훌쩍 넘어 시민들이 터를 잡고 살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시는 일하는 과정에서 과오가 있었던 사업 중에 하나가 경전철이다. 아직도 그 갈등이 이어지고 고민은 없어지지 않다. 어쩌랴, 이것도 우리의 자산인 것을, 멀쩡히 있는 걸 때려 부술 순 없는 계륵이 된 경전철을.

경전철이 이미 터에 지문을 남겼으니 우리는 아낌 없이 사용하는 하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

역마다 개성 있는 곳들이 많아

회룡역은 역사의 부피가 크다. 이 절은 사패산과 도봉산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천년고찰이다. 오래전부터 비구니들이 도량을 닦는 청정한 절이다.

이곳은 풍광이 뛰어나 늘 등산객과 불자들이 드나든다. 의정부의 힐링센터가 바로회룡사다. 이 절에서 사패산 방향으로 가면 호원사가 큰 바위를 등에 두고 의정부 시내를 급어보고 있다.

범골역은 회룡역과 더불어 이성계의 함흥차사 역사를 증거하는 명당이다. 조정의 대신들이 한양의 먼 변방까지와서 국정을 결제받고 하는 수고로움이 어려있는 곳이다. 범골은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을의 이름은 터와 함께 역사가 녹아 있을 터. 동네사람들을 벌벌 떨게한 호랑이의 출몰은 온 동네의 충격이자 재해였다.

의정부역은 상업의 중심지다. 의정부를 떠나 경기북부와 도봉과 남양주시 일부를 상권으로 둔 최대 마켓이다. 특히 의정부역사를 새로 지으면서 신세계백화점을 같이 입점을 시킨 것은 잘한 일이다.

이 백화점이 들어서고 나서 상권이 부흥하고 시민이 누리는 쇼핑의 질과 양이 풍부해졌다. 신세계백화점은 의정부 상권의 로얄젤리다.

이 역사 밑으로 '언더그라운드'가 있다. 위에는 신세계, 밑에는 '지하세계'가 존재한다. 천 개가 넘는 수많은 가게들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맹렬히 움직인다. 마치 땅굴에서 개미들이 사는 것 같다.

신세계가 고급 상품을 취급한다면 여긴 서민 냄새가 나는 일상 용품 등을 취급한다. 특히 휴대폰 가게는 대부분 여기에 몰려있다.

어룡역은 사실 정문무장군역으로 정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드는 역이다.시에서 이 묘지와 사당을 짓고 유지하는데 많은 예산과 유지비를 생각하면 당연히 어룡역은 정문무 장군묘로 바꿔도 무리는 없지 않을까.

이는 청소년에게 역사의식도 고취하고 우리 고장에 이런 위대한 군인을 시민에게 알리는 좋은 기회이다.

이 역에는 관광과 쇼핑이 가능한 롯데마트가 있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차로 20분 거리에 신숙주묘가 있어 같이 들려도 좋다.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