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중순. 천지사방에는 신록이 시나브로 왕성하여 초록으로 사위 어 갈 무렵. 서초등학교에서 의정부역으로 자전거를 타고 가고 있다.

그날따라 왜 그랬는지 성당 앞에서 자전거를 세우고 마당을 본다.

고풍스런 성당이 마당 한 가운데서 위엄있게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우주의 성스러운 기운이 나를 이끄는 듯 하다. 마당 왼쪽에 작은 카페로 간다.

서너 탁자에는 성당 신도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오후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간간히 수다와 웃음 소리가 작게 때로는 크게 들린다. 신성스런 공간에 인간의 목소리가 틈입한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성당이다.

위엄 있는 그러나 편안한 신앙 공간

야외 의자에 앉아 원두커피를 마시며 분위를 살핀다. 왼쪽 건물에는 사무실과 사제관이 소박하게 있다.

본당에는 이 성당의 역사를 무언으로 증명하고 있는 듯 하다. 건축물이 크지 않다.시야에 적당하게 들어온다.

서양 성당이나 교회에서 본 거대한 고딕형 건축물처럼 불편하지 않다. 우리는 그런 건축물에 얼마나 기가 죽었던가.

성 베드로 성당에서, 쾰른 대성당에서 성가족성당에서는 그 경이감을 넘어 인간 한계의 극한을 쥐어 짠 부자연스러움을 느낀다. 한마디로 기가 질린달까.

60년 넘은 의정부성당의 본당은 그래서 우리를 위안한다. 초로에 접어든 본당은 의연한 노인을 보는 듯 하다. 현대사의 온잦 질곡을 짊어지고.

흙이 있는 마당은 비 올때 흙내음이

본당 뒷 건물에는 대성당과 그 유명한 성모유치원이 있다.

연말이 되면 이 유치원에 입학하려고 밤늦게 줄 서는 맹모삼천의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보는 흙으로 된 너른 마당이다. 비가오면 흙내음이 올라올 것 같다. 오래된 성당 옆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니 둥근 탁자와 연못이 있다.

작은 연못에는 크고 작은 잉어 8마리가 유유자적이다. 연못 주변에는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뤄 제법 호젓한 분위기다.

탁자에 앉아 성모상을 본다. 종교적인 공간이지만 꼭 그렇지만 않다.나무가 많아서 그런가. 그냥 편안하다. 시외에 있는 멋진 카페 못지 않다.

카페와 친환경 농산물과 사회적 피드백

커피를 마시고 성당에서 판매하는 농산물 코너를 구경한다. 주로 연천,포천 등지에서 나는 친환경 농산물을 팔고있다.

꽤 많은 신도들이 우리 농산물을 소비해주고 있다. 농민과 도시민을 연결하는 미디어 역할을 성당이 적절하게 수행하고 있다.

천주교가 사회적 의제와 고통에 건강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우리사회는 자폐적 신앙공동이라는 폐쇠회로에 갇혀 시대의 고통과 슬픔을 눈감고 있는 종교가 있는 게 사실이다.

의정부성당은 시민들과 사회적 연대에 피드백을 아끼지 않는다. 그 좋은 예가 세월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슬픔과 분노로 휩싸였을 때 사제들은 촛불시위로 정부와 정치권에 그 해결책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끈질기게. 지금도.

유정란 두 팩을 사서 성당을 나온다. 나도 의정부에 살지만 살지만 어떻게 보면 '내부 관광객'이다.

여기 오면 올수록 '올드'한 성당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

꼭 관광객이 아니어도 사람은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오래된 것을 찾는 것은 자연 스럽다.

새로운 것들은 왠만한 도시엔 얼추 다 있다. 도시인은 도시화와 이미디의 과잉으로 심신이 지쳐있다.

새 것보다는 오래된 것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의정부성당은 사람들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평안을 준다.

5월의 의정부성당은 신록과 초록이 쌍끌이 하며 신도와 시민에게 녹색 감수성이라는 '사회적 피톤치드'를 제공한다.

의정부성당은 '오래된 미래'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건축물로 남아

외부인과 관광객은 그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에서 '오래된 미래'를 본다.

'관광지는 외부인이 발견한다'라는 말이 있듯이 의정부성당이 파리의 노틀담성당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종교와 신앙을 떠나 시민이 자주 드나들며 기억과 추억을 켜켜히 쌓는다면 먼 훗날 그곳이 명소가 된다. 지금 의정부성당이 그런 기억과 추억을 저축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의정부에 역사가 지긋히 스며든 건축물이 몇 개가 있을까.

오래된 한옥이 개발이란 명목으로 남아나지 않았고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건물들 역시 택지 개발 앞에 추풍낙엽이었다. 우리는 개발이라는 광풍의 역사를 살아 왔다.

의정부성당은 1953년 이계광 신부가 세웠다.

그 후에 교세가 확장되어 의정부1동성당,의정부4동성당,신곡성당,용현성당,녹양성당을 배출하여 '엄마 성당'이란 애칭을 얻었다.

또한 의정부성당은 2004년 '주교좌 의정부성당'으로 승격되어 그 권위와 교세를 튼실히 다지고 있다.

지금은 성모병원과 성모유치원,신우신용협동조합을 운영하며 대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의정부성당은 도시에 행복을 주는 오아시스

'공간이 의식을 좌우한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공간이 삶의 양식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2012년 7월에 의정부에 공간에 큰 충격이 있었다. 좁은 도시에 거대한 지상 시멘트 구조물을 지어 경전철을 운행하게 했다.

그 도시 인프라는 도시 미관을 해치는 '폭력'이 있었다. 물론 경전철이 도시의 교통 분담을 해결해 준 면이없지 않다.

그러나 그 편익에 비해 시민들이 겪는 스트레스와 100억 적자라는 경제적 짐이 적지 않다.

경전철로 인해 시의 교통난이 완화됐다는 증거는 없다. 버스와 전철, 마을버스가 동네동네 다 들어간다. 그리 불편하지 않다.

경전철 문제는 의정부예술의전당이 시민들 에게 문화.예술로 향연을 제공하는 상징 가치를 경전철로 인해 몇 배 까먹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경전철은 도시에 민폐다. 지금 그 적자를 해소하는 방법도 난망이다.

어쩌면 의정부성당과 경전철은 좋은 대비가 된다.

시민이 행복하려면 걷기 좋은 도로와 공기가 좋아야 하고 병원과 쇼핑센터와 재래시장,도서관과 학교,공원 등이 적절하게 배치,분산되어야 한다.

그 장소에 있는 건축물도 적절하게 잘 지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야 한다. 대중의 행복은 건축이 중요하다.

터키 출신 노벨문학상을 탄 오르한 파묵은 자신이 태어나고 지금도 살고 있는 도시 이스탄불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불행이란 자신과 도시를 혐오하는 것이다"

의정부성당은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 그래서 그곳에 다녀오면 종요롭다. 그러면 자신과 도시를 사랑하게 된다.

본지 객원기자 황현호(의정부 문화발전소 소장)

<본 기사는 의정부시 조례에 따른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